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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30분의 힘: 주간 회고

June 5, 2025

productivitycareer

작년 8월, 시니어 개발자와 1on1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주니어랑 시니어의 차이가 뭔지 아냐? 기술력 차이? 물론 그것도 있지. 근데 더 중요한 건, 시니어는 같은 실수를 두 번 안 해. 근데 실수를 안 해서 그런 게 아니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서 그런 거야."

그때는 "아, 그렇구나" 하고 넘겼다. 좋은 말이지만 막상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류의 조언. 그렇게 넘어갈 뻔했는데, 9월에 일이 터졌다.

같은 버그를 두 번 만들었다. useCallback 의존성 배열에 상태 값을 빠뜨려서 stale closure가 발생하는 실수를 7월에도 했고 9월에도 했다. 7월에 이 버그로 2시간을 삽질한 기억이 희미하게 있었는데, 그 교훈을 어디에도 정리하지 않았다. 머릿속에만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은 2달이면 그 기억을 반쯤 지워버린다. 9월에 같은 패턴을 만났을 때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는 기시감만 있었고, 구체적인 해결법은 기억나지 않았다. 결국 또 1시간 30분을 삽질했다.

그 삽질을 끝내고 나서 시니어가 한 말이 떠올랐다.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서 그런 거야." 그래서 실제로 해보기로 했다.

시작: 금요일 5시 30분#

형식은 단순하게 잡았다. 매주 금요일, 퇴근 30분 전인 5시 30분에 시작한다. 노션에 주간 회고 템플릿을 하나 만들었다. 처음에 5개 항목을 넣으려다가, 항목이 많으면 쓰기 싫어지니까 세 가지로 줄였다.

  1. 이번 주에 뭘 했는가 — 완료한 작업, 참여한 미팅, 해결한 이슈
  2. 뭘 배웠는가 — 새로 알게 된 기술, 삽질하다 깨달은 것, 코드 리뷰에서 받은 피드백
  3. 다음 주에 뭘 할 것인가 — 이어서 해야 할 일, 개선하고 싶은 점

이게 전부다. 거창한 회고가 아니라, 한 주를 빠르게 복기하는 거다. 노션 템플릿을 복제해서 날짜를 적고, 기억나는 대로 적는다.

첫 달: 의외로 쓸 게 없다#

처음 몇 주는 각 항목에 두세 줄을 쓰는 게 고작이었다.

"이번 주에 뭘 했는가: 결제 페이지 UI 작업. PR 3개 올림. 스탠드업 참석."

이렇게 쓰고 나면 "이게 뭐야" 싶다. 기록이라기보다는 출석 체크 같았다. 이걸 왜 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고, 세 번째 주에는 금요일 5시 반에 "오늘은 귀찮은데 다음 주에 하지 뭐"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근데 그날 안 쓰면 다시는 안 쓸 것 같았다. 습관을 만드는 초기 단계에서 한 번 빠지면 다음 주도 빠지고, 그 다음 주도 빠지고, 결국 "원래 안 하는 거"가 된다. 그래서 억지로 노션을 열었다. 그리고 그 주에 있었던 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적어보려고 노력했다.

"이번 주에 뭘 했는가: 결제 페이지 UI 작업 중 모바일 반응형에서 레이아웃이 깨지는 문제를 발견했다. CSS Grid로 잡았던 걸 Flexbox로 바꾸니까 해결됐는데, 왜 Grid에서 안 됐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 다음 주에 CSS Grid의 auto-fill과 auto-fit 차이를 공부해보자."

이렇게 쓰니까 달랐다.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명확히 인식하고, 다음 주에 뭘 해야 하는지가 보였다. "뭘 배웠는가"도 마찬가지였다. "CSS Grid 좀 공부했음" 대신 "CSS Grid에서 auto-fill은 가능한 한 많은 트랙을 생성하고, auto-fit은 빈 트랙을 접는다는 차이를 알았다. 근데 실무에서 이게 언제 차이가 나는지는 아직 감이 없다"라고 적으면 내 이해의 깊이가 보인다.

3개월 차: 패턴이 보이기 시작한다#

11월이 되자 회고가 12개 쌓였다. 어느 주말에 지난 회고들을 쭉 읽어봤는데, 흥미로운 패턴이 보였다.

매달 비슷한 실수가 반복되고 있었다. API 연동할 때 에러 핸들링을 빠뜨리는 것이 9월, 10월, 11월 회고에 모두 등장했다. 컴포넌트를 너무 크게 만들었다가 나중에 쪼개는 것도 반복됐다. PR 올리기 전에 셀프 리뷰를 안 하고 올려서 리뷰어한테 지적받는 것도 여러 번 적혀 있었다. 한 번 반성하고 넘어가지만 다음 달에 또 같은 이야기를 적고 있었다.

반성만 하면 아무것도 안 변한다. 이걸 보고 나서 반복되는 패턴에 대해 구체적인 대응책을 세웠다.

API 에러 핸들링 → PR 셀프 체크리스트에 "모든 API 호출에 에러 바운더리/try-catch 확인" 항목 추가. PR 올리기 전에 이 체크리스트를 확인하기로 함.

컴포넌트 크기 → 한 파일이 150줄 넘으면 일단 분리를 고민하는 규칙 설정. 150줄이 정답은 아니지만, 기준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

셀프 리뷰 → PR 올리기 전에 최소 10분은 내 코드를 읽는 시간을 갖기. 타이머를 켜고 10분 동안 PR의 diff를 처음부터 읽는다. 남이 쓴 코드를 읽는다고 생각하면 실수가 보인다.

이런 소소한 개선들이 쌓이면서, 코드 리뷰에서 받는 코멘트가 줄기 시작했다. 11월에 평균 PR당 코멘트가 67개였는데, 1월에는 34개로 줄었다. 팀 리드가 12월 1on1에서 "요즘 PR 퀄리티가 좋아졌네"라고 했을 때, 속으로 주간 회고 덕분인 걸 알고 있었다.

쓰는 과정에서 생기는 깨달음#

회고의 진짜 가치는 기록 자체가 아니라, 쓰는 과정에서 생각이 정리된다는 거다.

머릿속으로만 "이번 주 힘들었네" 하면 그냥 막연한 피로감이다. 근데 "이번 주에 뭐가 힘들었지?"하고 적어보면 구체적인 원인이 보인다. "화요일 오후에 갑자기 들어온 핫픽스 때문에 진행 중이던 Feature A 작업이 밀렸다. 핫픽스 대응에 3시간을 쓰고 돌아왔더니 컨텍스트가 다 날아가서 Feature A를 다시 파악하는 데 1시간이 더 걸렸다." → "핫픽스 대응 후 메인 작업으로 복귀하는 시간을 줄이려면? → 작업 전에 TODO 코멘트로 현재 진행 상황을 적어두면 복귀가 빠를 거다."

이런 구체적인 개선 아이디어는 글로 쓰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머릿속에서만 돌리면 "힘들었다"에서 끝난다.

또 하나. "이번 주에 뭘 배웠는가"를 적을 때, 아무것도 적을 게 없으면 꽤 찜찜하다. 5일을 일했는데 새로 배운 게 없다? 물론 매주 획기적인 걸 배울 수는 없다. 하지만 3주 연속 이 항목이 빈약하면 "나 지금 성장이 정체된 건 아닌가?" 하는 경종이 울린다. 그러면 다음 주에는 의식적으로 새로운 걸 하나라도 시도하게 된다. 블로그 글 하나를 읽든, 새 라이브러리를 만져보든, 동료의 코드를 파보든.

형식의 변화#

6개월 동안 형식이 조금씩 변했다. 처음에는 세 항목만 있었는데, 지금은 두 개가 더 추가됐다.

  • 감사할 것: 이번 주에 고마웠던 일이나 사람. 코드 리뷰에서 좋은 피드백을 준 동료라든가, 어려운 이슈를 같이 디버깅해준 팀원이라든가, 점심에 맛있는 거 사준 동기라든가. 뭐든 하나. 이 항목을 쓰면 한 주를 긍정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그래도 이건 좋았지"를 찾게 된다.
  • 컨디션 체크: 1~10점으로 이번 주 컨디션을 기록한다. 직감적으로 매기면 된다. 3개월 치를 보면 컨디션의 주기가 보인다. 내 경우에는 대략 3주 괜찮고 1주 축 처지는 패턴이었다. 이 패턴을 알면 "아 이번 주 컨디션이 안 좋은 건 자연스러운 주기구나.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게 아니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항목이 다섯 개가 되니까 30분이 좀 빠듯해졌다. 어떤 주는 40분이 걸린다. 그래도 퇴근 전에 이 시간을 쓰는 건 아깝지 않다. 금요일 퇴근 전 30분을 쓰면, 다음 월요일 아침을 30분 아낄 수 있다. "이번 주에 뭐 하지?"가 아니라 "지난주 회고에 적어둔 거 이어서 하자"가 되니까.

6개월 후#

회고가 26개 쌓였다. 올해 초에 전체를 한 번 쭉 읽어봤는데, 6개월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할 수 있었다. 이게 생각보다 강력했다.

8월의 나: "TypeScript 타입 추론이 어려워서 any를 많이 쓰고 있다. 타입 에러가 나면 일단 any로 때우고 넘어간다." 2월의 나: "제네릭으로 API 응답 타입 유틸을 만들어서 팀에 공유했다. ApiResponse<T>로 감싸면 data, error, loading 타입이 자동 추론된다."

9월의 나: "PR을 올리면 코멘트가 10개씩 달려서 스트레스다. 리뷰어가 내 코드를 싫어하는 건가." 1월의 나: "이번 주 PR에 코멘트가 2개밖에 없었다. 셀프 리뷰가 습관이 된 것 같다. 근데 코멘트가 너무 없으면 그것도 불안하다."

10월의 나: "회의에서 의견을 잘 못 내겠다. 남들 앞에서 틀린 말 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있다." 2월의 나: "오늘 디자인 리뷰에서 모바일 터치 타겟 크기 관련 의견을 냈고 반영됐다."

이런 변화를 의식하지 못했으면 "나 아직 많이 부족한데"하면서 자책만 했을 거다. 기록이 있으니까 성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성장은 느리게 일어나서 본인이 잘 모른다. 매일 보는 사람의 변화는 안 느끼지만, 6개월 전 사진을 보면 다른 사람 같은 것처럼.

주간 회고가 대단한 게 아니다. 거창한 자기 계발 습관도 아니다. 금요일에 30분 앉아서 한 주를 돌아보는 것. 그것뿐이다. 근데 그 "그것뿐"이 26주를 바꿨다.

요즘은 금요일 5시 30분이 되면 살짝 기대가 된다. 이번 주에 뭘 적을 수 있을지. 이게 습관이 된 거라면 된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