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기
취미가 없는 개발자

December 3, 2020

essay

"취미가 뭐예요?"

이 질문을 받으면 멈칫한다. 코딩? 그건 일이다. 기술 블로그 읽기? 그것도 일의 연장이다. 사이드 프로젝트? 일과 다를 게 없다. 일하고, 일과 관련된 걸 공부하고, 일과 관련된 글을 읽는다. 이게 내 일상이었다.

처음에는 이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코딩이 재미있으니까.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게 즐거우니까. 그런데 몇 년이 지나니까 뭔가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코딩만 하면 생기는 일#

대화 주제가 좁아진다. 개발자 모임에서는 자연스럽지만, 비개발자 친구들과 만나면 할 이야기가 점점 줄어든다. "요즘 뭐 해?" — "코딩." "그 외에는?" — "..."

사고가 한쪽으로 기운다. 모든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려는 습관이 생긴다. 효율성, 최적화, 시스템 사고 — 이게 좋을 때도 있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코드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번아웃에 취약해진다. 취미가 코딩이면, 일에서 지쳤을 때 쉴 곳이 없다. 쉬는 시간에도 같은 종류의 인지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뇌가 모드를 전환할 기회가 없다.

시도한 것들#

의식적으로 코딩과 관련 없는 활동을 시도해봤다.

요리. 레시피를 따라 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요리가 좋은 건 결과물이 즉시 나온다는 거다. 코드는 배포하고 사용자가 써봐야 피드백이 오지만, 음식은 만들고 바로 먹으면 된다. 그리고 맛이 있든 없든 30분이면 끝난다. 커밋할 필요도, 테스트할 필요도 없다.

러닝. 달리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기술 팟캐스트를 끄고, 음악도 끄고, 그냥 발소리만 듣고 달린다. 머리를 비우는 데 이것만 한 게 없다.

소설 읽기. 기술서적 대신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은 효율적이지 않다. 요약해서 핵심만 뽑아낼 수 없다. 그게 좋다. 느리게 읽고, 등장인물의 감정에 공감하고, 다 읽고 나서 여운에 잠기는 시간. 비효율적이지만 풍요로운 시간이다.

취미의 기준#

처음에는 "생산적인 취미"를 찾으려고 했다. 외국어 공부, 악기 연주 — 뭔가 스킬이 쌓이는 것. 이것도 결국 개발자의 성장 강박이다. 취미에도 성과를 기대하는 거다.

취미의 기준을 바꿨다. "이걸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는가?" 그게 전부다. 잘할 필요도 없고, 발전할 필요도 없고, 남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다. 그냥 하고 있으면 즐거운 것.

아직 "이게 내 취미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걸 찾지는 못했다. 이것저것 해보는 중이다. 어쩌면 평생 찾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코딩만 하던 때보다는 낫다. 가끔 서투르게 요리를 하고, 느리게 달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코딩과 전혀 다른 종류의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취미 시간이 생기고 나서 코딩이 다시 재미있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