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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공부를 시작한 개발자

July 21, 2022

essayfinance

개발자는 다른 직군에 비해 연봉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돈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잘 버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 나도 그랬다. 월급이 들어오면 쓰고, 남으면 저축하고, 투자는 언젠가 하겠지 하고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Morgan Housel의 "돈의 심리학"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연봉은 소득이지 자산이 아니다#

Housel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는 "부를 만드는 건 소득이 아니라 저축률"이라는 것이다. 연봉 1억을 벌어도 9천만 원을 쓰면 남는 건 천만 원이다. 연봉 6천만 원을 벌고 3천만 원을 쓰면 남는 건 3천만 원이다.

개발자는 소득이 높으니까 소비도 늘어나기 쉽다. 좋은 장비, 자기계발 비용, 외식 — 하나하나는 합리적이지만 전체 합산하면 놀랍다. 가계부를 처음 써봤을 때 한 달 지출을 보고 놀랐다. "이만큼 쓰고 있었나?"

처음 시작한 것들#

비상금 확보. 6개월 치 생활비를 현금성 자산으로 확보했다. 개발자 시장이 좋다고 해도, 이직 기간이 생기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다. 비상금이 있으면 급한 마음에 잘못된 선택을 안 하게 된다.

인덱스 펀드. 개별 종목을 고르는 건 나한테 맞지 않았다. 시장을 이기려면 전문가도 어려운데, 코딩하면서 주식 차트를 보는 건 비효율적이다. S&P 500이나 코스피 200 같은 시장 전체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에 매월 자동이체를 걸었다. 타이밍을 잡으려는 유혹을 줄이려고 자동화한 거다.

연금. 개인연금을 시작했다. 세액공제도 되고, 복리 효과가 20~30년 쌓이면 크다. "은퇴는 한참 뒤인데"라고 생각했지만, 한참 뒤이기 때문에 일찍 시작하는 게 유리하다.

개발자에게 유리한 점#

개발자의 사고방식은 돈 관리와 잘 맞는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감으로 투자하는 대신, 수익률 데이터, 수수료 구조, 세금 효과를 비교한다. 스프레드시트로 시뮬레이션하는 게 자연스럽다. 30년간 연 7% 복리 vs 연 5% 복리의 차이를 직접 계산해보면 수수료 0.5%의 무게를 체감한다.

자동화. 자동이체, 자동 리밸런싱, 세금 최적화를 시스템으로 만든다. 매달 고민할 필요 없이 한 번 설정해두면 돌아간다. 코드로 자동화하듯이 돈도 자동화할 수 있다.

장기적 사고. 좋은 코드는 미래의 유지보수를 고려한다. 돈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소비가 미래의 선택지를 얼마나 좁히는지 생각하게 됐다.

달라진 생각#

돈 공부를 시작한 뒤로 연봉 협상을 다르게 본다. 예전에는 "연봉 얼마"에만 집중했는데, 이제는 스톡옵션의 행사 조건, 퇴직연금 회사 부담금, 자기계발 비용 지원 같은 것도 본다. 전체 보상 패키지를 볼 수 있게 됐다.

이직할 때도 달라졌다. "연봉 500만 원 더 주는 곳" vs "연봉은 비슷하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곳". 예전에는 당장의 숫자를 좇았는데, 5년 뒤의 시장 가치를 생각하면 판단이 달라진다.

가장 큰 변화는 "충분한" 기준이 생긴 거다. 이전에는 "많을수록 좋다"였는데, 지금은 "이 정도면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숫자를 알고 있다. 그 숫자를 알면 쓸데없는 비교와 욕심에서 자유로워진다.

돈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다. 좋은 도구를 잘 다루면 선택의 자유가 생긴다. 억지로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해볼 수 있는 자유. 개발자에게 돈 공부는 기술 공부만큼이나 커리어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