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는 다른 직군에 비해 연봉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돈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잘 버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 나도 그랬다. 월급이 들어오면 쓰고, 남으면 저축하고, 투자는 언젠가 하겠지 하고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Morgan Housel의 "돈의 심리학"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연봉은 소득이지 자산이 아니다
Housel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는 "부를 만드는 건 소득이 아니라 저축률"이라는 것이다. 연봉 1억을 벌어도 9천만 원을 쓰면 남는 건 천만 원이다. 연봉 6천만 원을 벌고 3천만 원을 쓰면 남는 건 3천만 원이다.
개발자는 소득이 높으니까 소비도 늘어나기 쉽다. 좋은 장비, 자기계발 비용, 외식 — 하나하나는 합리적이지만 전체 합산하면 놀랍다. 가계부를 처음 써봤을 때 한 달 지출을 보고 놀랐다. "이만큼 쓰고 있었나?"
처음 시작한 것들
비상금 확보. 6개월 치 생활비를 현금성 자산으로 확보했다. 개발자 시장이 좋다고 해도, 이직 기간이 생기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다. 비상금이 있으면 급한 마음에 잘못된 선택을 안 하게 된다.
인덱스 펀드. 개별 종목을 고르는 건 나한테 맞지 않았다. 시장을 이기려면 전문가도 어려운데, 코딩하면서 주식 차트를 보는 건 비효율적이다. S&P 500이나 코스피 200 같은 시장 전체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에 매월 자동이체를 걸었다. 타이밍을 잡으려는 유혹을 줄이려고 자동화한 거다.
연금. 개인연금을 시작했다. 세액공제도 되고, 복리 효과가 20~30년 쌓이면 크다. "은퇴는 한참 뒤인데"라고 생각했지만, 한참 뒤이기 때문에 일찍 시작하는 게 유리하다.
개발자에게 유리한 점
개발자의 사고방식은 돈 관리와 잘 맞는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감으로 투자하는 대신, 수익률 데이터, 수수료 구조, 세금 효과를 비교한다. 스프레드시트로 시뮬레이션하는 게 자연스럽다. 30년간 연 7% 복리 vs 연 5% 복리의 차이를 직접 계산해보면 수수료 0.5%의 무게를 체감한다.
자동화. 자동이체, 자동 리밸런싱, 세금 최적화를 시스템으로 만든다. 매달 고민할 필요 없이 한 번 설정해두면 돌아간다. 코드로 자동화하듯이 돈도 자동화할 수 있다.
장기적 사고. 좋은 코드는 미래의 유지보수를 고려한다. 돈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소비가 미래의 선택지를 얼마나 좁히는지 생각하게 됐다.
달라진 생각
돈 공부를 시작한 뒤로 연봉 협상을 다르게 본다. 예전에는 "연봉 얼마"에만 집중했는데, 이제는 스톡옵션의 행사 조건, 퇴직연금 회사 부담금, 자기계발 비용 지원 같은 것도 본다. 전체 보상 패키지를 볼 수 있게 됐다.
이직할 때도 달라졌다. "연봉 500만 원 더 주는 곳" vs "연봉은 비슷하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곳". 예전에는 당장의 숫자를 좇았는데, 5년 뒤의 시장 가치를 생각하면 판단이 달라진다.
가장 큰 변화는 "충분한" 기준이 생긴 거다. 이전에는 "많을수록 좋다"였는데, 지금은 "이 정도면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숫자를 알고 있다. 그 숫자를 알면 쓸데없는 비교와 욕심에서 자유로워진다.
돈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다. 좋은 도구를 잘 다루면 선택의 자유가 생긴다. 억지로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해볼 수 있는 자유. 개발자에게 돈 공부는 기술 공부만큼이나 커리어에 도움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