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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에게 딥워크란 결국 이런 거였다

March 13, 2021

productivitycareer

작년 여름, 하루 종일 코딩했는데 커밋이 하나도 없는 날이 있었다.

뭘 했는지 되짚어봤다. 오전에 슬랙 메시지 5개 답하고, PR 리뷰 2개 하고, 스탠드업 참석하고, 점심 먹고 돌아와서 Jira 티켓 정리하고, 오후에 코드 좀 보다가 또 슬랙, 그러다 퇴근. 자리에 8시간 앉아 있었지만 코드에 진짜 집중한 시간은 40분도 안 됐을 것이다.

Cal Newport의 Deep Work을 읽은 건 그즈음이었다. "딥워크는 인지적으로 까다로운 작업에 방해 없이 집중하는 상태"라는 정의가 마음에 남았다. 근데 책을 읽고 나서도 한동안은 달라진 게 없었다. 이론을 안다고 집중이 되는 건 아니니까.

슬랙 알림 끄기는 반만 맞다#

처음에 시도한 건 뻔한 것들이었다. 슬랙 알림 끄기, 핸드폰 뒤집어 놓기, 이어폰 쓰기. 일주일 정도는 효과가 있었다. 근데 알림을 꺼도 습관적으로 슬랙을 열게 된다. "혹시 뭐 놓친 거 있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결국 깨달은 건, 문제가 환경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있다는 거였다. 집중하려면 "지금 이 시간에는 슬랙에서 뭐가 오든 상관없다"는 확신이 필요한데, 그 확신은 팀과의 합의 없이는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팀 리드한테 말했다.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는 슬랙 응답이 느릴 수 있는데 괜찮을까요?" 예상보다 쉽게 "당연하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알고 보니 팀원 대부분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2시간이 한계다#

딥워크 시간을 아침에 4시간 잡겠다고 큰소리쳤다가 3일 만에 포기했다. 4시간 연속 집중은 인간의 뇌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내 뇌는.

결국 2시간이 현실적인 한계라는 걸 인정했다. 오전 10시~12시. 이 2시간 동안 가장 인지적으로 어려운 작업 하나만 한다. 새 기능의 핵심 로직 설계, 복잡한 버그 디버깅, 아키텍처 리팩토링 같은 것들. PR 리뷰나 Jira 정리는 오후로 미룬다.

작아 보이지만 이 2시간이 하루 생산성의 80%를 만든다. 나머지 6시간은 미팅, 리뷰, 소통, 잡무에 써도 괜찮다. 2시간의 진짜 집중이 8시간의 분산된 노력보다 낫다.

시작이 제일 어렵다#

집중 시간을 확보해도, 막상 그 시간이 되면 코드를 열기가 싫을 때가 있다. 뇌가 저항하는 거다. 복잡한 문제를 마주하면 본능적으로 쉬운 일로 도망치고 싶어진다. "일단 메일 확인만..." "이 PR 리뷰 먼저 빠르게..." 하다 보면 2시간이 사라진다.

내가 쓰는 트릭은 단순하다. "5분만 하자." 타이머를 5분 맞추고 시작한다. 5분 후에 정말 하기 싫으면 그만둬도 된다는 규칙이다. 근데 신기하게도, 5분이 지나면 이미 몰입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작의 마찰만 넘기면 된다.

뇌과학에서 말하는 "작업 흥분(task momentum)"이 이거다. 하기 싫어도 일단 시작하면 뇌가 그 작업에 맞춰 활성화된다. 의욕이 생겨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시작하면 의욕이 생긴다.

환경 설계가 의지력보다 세다#

의지력으로 집중하겠다는 건 매번 실패한다. 대신 환경을 설계한다.

내 딥워크 루틴은 이렇다.

  1. 10시가 되면 슬랙 상태를 "집중 모드"로 바꾼다
  2. 브라우저에서 슬랙, 메일 탭을 닫는다 (안 닫으면 무의식적으로 클릭한다)
  3. VS Code를 전체 화면으로 띄운다
  4.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에 가사 없는 음악을 건다
  5. 어제 퇴근 전에 적어둔 "내일 딥워크에서 할 일"을 본다

5번이 핵심이다. 딥워크 시간이 시작됐는데 "오늘 뭐 하지?"부터 고민하면 그것만으로 20분이 날아간다. 전날 퇴근 전에 다음 날 집중할 작업을 구체적으로 적어두면, 아침에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장바구니 쿠폰 적용 로직에서 중복 할인 처리하는 부분 구현" 이 정도 구체성으로.

딥워크가 안 되는 날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일주일에 5일 다 딥워크를 하지는 못한다. 월요일은 스프린트 플래닝으로 오전이 통째로 날아가고, 금요일은 회고가 있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도 있고, 급한 장애 대응이 끼어드는 날도 있다.

일주일에 3일, 하루 2시간씩 확보하면 잘한 거다. 주 6시간의 딥워크. 이게 현실적인 목표다.

완벽하게 하려다가 아예 안 하게 되는 것보다, 가능한 날에만이라도 하는 게 낫다. 어떤 주는 2일밖에 못 할 수도 있다. 그래도 0일보다는 낫다.


딥워크에 대해 2년 동안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남은 결론은 간단하다. 하루에 진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고, 그 짧은 시간을 지키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근데 그걸 지키는 사람과 안 지키는 사람의 아웃풋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