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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사는 것의 용기

March 14, 2022

essaycareer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2년마다 이직해야 연봉이 오른다"는 말이 정설처럼 돌아다닌다. 링크드인을 열면 "OO에서 XX로 이직했습니다" 소식이 끝없이 올라온다. 모든 사람이 더 좋은 곳으로,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3년째 같은 회사에 있다. 가끔 불안하다. 시장에서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닌가? 더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데 이 불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실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

빠른 이직이 항상 좋은가#

이직하면 연봉이 오르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연봉만 놓고 판단하면 놓치는 게 있다.

깊이. 한 도메인에서 2년 이상 일하면, 표면적 구현을 넘어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가 보이기 시작한다. 왜 이 아키텍처를 선택했는지, 왜 이 기술 부채가 생겼는지, 어떻게 점진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지. 이런 감각은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해봐야 생긴다.

2년마다 이직하면 항상 "새 프로젝트 적응기"에 있게 된다. 온보딩하고, 코드베이스를 파악하고, 팀 문화에 적응하고. 이 시기가 지나야 진짜 기여가 시작되는데, 그 전에 다시 이직하는 패턴.

관계. 오래 일하면 동료와의 신뢰가 쌓인다. 슬랙 한 줄로 해결되는 일이 새 팀에서는 미팅 두 번이 필요하다. 이 신뢰의 가치는 연봉으로 환산되지 않지만, 일의 효율에 큰 영향을 준다.

영향력. 오래 있으면 팀과 조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가 된다. 기술 방향을 제안하고,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후임을 키우는 것. 이런 경험은 매니지먼트 트랙이든 IC 트랙이든 시니어로 가는 데 필수적이다.

머무르기의 가치#

같은 자리에 머무르는 건 정체가 아니다. 같은 회사에서도 성장할 수 있다.

기존 시스템을 개선하는 경험이 있다. 처음부터 만드는 것보다 어렵고, 배우는 것도 많다. 레거시 코드를 리팩토링하고, 기술 부채를 갚고, 성능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설계 판단력이 길러진다.

팀을 성장시키는 경험도 있다. 주니어가 들어와서 시니어로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하는 건, 자기 자신의 기술적 깊이와는 다른 차원의 성장이다.

제품이 실제 사용자에게 쓰이면서 생기는 문제를 장기간 추적하는 경험도 이직하면 얻기 어렵다. "6개월 전에 내린 아키텍처 결정이 지금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는 피드백 루프. 이게 판단력을 키운다.

불안과 함께 살기#

그래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SNS에서 동료가 이직 소식을 올릴 때마다 흔들린다.

이 불안에 대처하는 방식을 하나 찾았다. "나는 지금 이 회사에서 아직 배울 게 있는가?"라고 자문하는 거다.

배울 게 남아 있으면 머무른다. 배울 게 정말 없다고 느끼면 —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고, 도전이 없고, 성장 방향이 보이지 않으면 — 그때 이직을 고민해도 늦지 않다.

중요한 건 이직의 타이밍이 아니라 이유다. "다들 이직하니까"가 아니라 "여기서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렵기 때문에"라는 이유. 전자는 불안에 의한 결정이고, 후자는 판단에 의한 결정이다.

느리게 간다고 틀린 게 아니다. 깊이와 속도는 종종 반비례한다. 빠르게 많은 곳을 경험하는 것도 전략이고, 한 곳에서 깊이 파는 것도 전략이다. 자기에게 맞는 속도를 찾는 게 중요하지, 남의 속도에 맞추는 건 의미 없다.